서울이 몇 해 전부터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밖에서 온 친선사절들의 입을 빌릴 것 없이 우리들 손으로도 만져 볼 수 있다. 지방과는 달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힘이 집중 투하되기 때문에 특별시로는 모자라 서울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빌어먹더라도 서울로 가야 살 수 있다는 집념으로 인해 서울은 날로 비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라고 해서 다 살기 좋고 편리하게만 되어 있지는 않다. 넓혀지고 치솟는 중심가의 근대화와는 상관없이 구태의연한 소외 지대가 얼마든지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나룻배가 오락가락한다면 백마강쯤으로 상상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곳은 부여가 아니라 대서울의 뚝섬나루다. 강 건너에는 수백 가구의 주민들이 납세를 비롯한 서민의 의무를 다하면서 살고 있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슨무슨 동임에는 틀림없는데, 거기는 전기도 전화도 수도시설도 없는 태고의 성역이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나룻배가 있을 뿐.

 

 그런데 그 나룻배라는 게 참 재미 있다. 그 배는 지극히 서민적이어서 편식을 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먹는다. 승용차뿐 아니라 소가 끄는 수레며 분뇨를 실은 트럭이며 그 바퀴 아래 신사와 숙녀들도 함께 태워 준다. 그리고 그 나룻배는 도무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아침 여섯 시에서 밤 열한시까진가 하는 사이에 적재량이 차야 움직인다. 아무리 바빠서 발을 동동 구른댔자 시간 부재不在의 배는 떠나지 않는다. 그거나마 장마철과 결빙기에는 며칠씩 거르게 된다.

 

 같은 서울이면서 강을 하나 두고 이렇듯 문명의 혜택은 고르지 않다. 처음으로 그 나루를 이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을 많이 당하게 된다. 시간을 예측 할 수 없어 허겁지겁 강변에 다다르면 한 걸음 앞서 배가 떠나고 있거나 저쪽 기슭에 매달린 채 부동자세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조금 늦을 때마다 '너무 일찍 나왔군' 하고 스스로 달래는 것이다. 다음 배편이 내 차례인데 미리 나왔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시간을 빼앗긴 데다 마음까지 빼앗긴다면 손해가 너무 많다.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에 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어진다.(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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